공부하는 학생이라면 누구나 그 말도 안 되는 레이스를 완주해내고 이겨내기 위해서 끊임없이 노력을 하며 의지를 불태운다. 하지만 백에 구십은 괄목할만한 기록을 내지 못하거나 스스로 세웠던 목표 기록에 도달하지 못한 채 레이스를 마치게 된다. 경우에 따라선 레이스를 중도에 포기하거나 다시금 출발점으로 돌아가 새 신발과 새 옷으로 갈아입고 재도전해보기도 한다. 하지만 다시금 시작한다고 모두가 만족할만한 결과를 얻는 것은 아니다. 개중에는 4~5번 재차 레이스를 하는 경우도 있지만, 이 역시 만만치 않은 비용이 소요되기에 누구에게나 그 선택권이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왜 이런 문제가 발생하는 것일까? 정상적인 공교육을 받은 학생이라면, 그래서 조금만 노력한다면 레이스에서 충분히 만족할만한 기록을 낼 수 있어야함에도 불구하고 그렇지 못한 것이 대한민국 교육현실이다. 올림픽 수영을 예로 들어보자. 동등한 신체조건, 체력, 실력, 연습량을 가진 선수들이 경쟁을 한다고 가정해보자. 부자나라 출신의 A라는 선수는 컴퓨터로 분석한 데이터에 기반한 체계적인 훈련 시스템, 최고의 트레이너들이 고안해낸 운동 프로그램, 식생활 개선 프로그램, 다국적 스포츠 용품 기업에서 그 선수를 모델로 개발해낸 저항을 최소화하는 맞춤 전신 수영복 등 본인 이외의 조건은 최상급으로 마련하여 올림픽에 출전했다. 반면 가난한 나리 출신의 B라는 선수는 기껏해야 트레이너 한명에 체계적인 훈련, 식생활 프로그램은 고사하고 수영복조차 후원을 받지 못해 집에서 쓰던 팬티 수영복을 입고 경기에 나섰다. 시합 결과는 어땠을까? 굳이 쓰지 않더라도 누구나 쉽게 그 결과를 생각해 낼 수 있을 것이다.
대한민국 교육 현실도 이와 다르지 않다. 자본주의는 이미 교육시장 깊숙이 파고들어왔으며 그 논리에 의해서 공교육 정책까지 좌지우지 되는 것이 현실이다. 사교육 시장은 이미 과포화 상태며 학원을 다니지 않는 학생, 미리 배워오지 않은 학생이 비정상적인 학생으로 취급되는 것이 현실이다. 학교라고 다른가? 모든 학생들에게 평등해야할 학교조차 이미 자본의 논리에 따라 변질된지 오래다. (이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은 생략하겠다. 학교를 다녀본 학생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느껴보았으리라 생각한다.)
수영 등의 스포츠에서도 좋은 기록을 내는 방법이나 트레이너의 훈련 관리법, 수영복 등이 있듯이 공부 역시 좋은 성적을 내기위한 비법이나 해법, 유명강사의 교육자료 등이 존재한다. 하지만 모두가 그것을 거머쥐고 동등한 조건에서 경쟁을 할 수는 없다. 그것은 위에서 언급했듯이 각자가 가지고 있는 태생적 조건이나 후천적 요인이 교육에 있어서도 큰 역할을 담당하기 때문이다. 세상 모두가 열악한 조건 속에서도 화려한 꽃을 피운 박태환, 김연아 같은 존재가 되기는 힘들다. 의지를 불태우며 열심히 하면 시궁창 같은 현실을 극복할 수 있다는 희망찬 미래는 이미 옛날 전래동화 속에서나 나올법한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이 시대의 전쟁이 과거와는 다르게 기술과 정보력의 싸움이 되어버린 것처럼 공부 역시 학습량이나 노력 못지않게 기술과 정보전을 다투는 전쟁터가 되어버렸다. 그리고 그 기술과 정보력를 먼저 거머쥔 자가 필연적으로 승리하는 것이 작금의 대한민국 교육에 모습이다.
그렇다면 현실이 시궁창이니 그냥 손 놓고 바라만 보고 있어야 할까? 당연히 아니다. 현실이 시궁창 속으로 더욱 빠져만 가는데 벗어날 수 있는 주어진 혹은 가진 도구들이 아무 것도 없다면, 그 비슷한 것을 죽도록 노력해서라도 만들어서 지독한 현실을 이겨내야만 한다. 말죽거리 잔혹사의 권상처럼 ['대한민국 학교 조ㅅ까라 그래']의 단말마 비명과 함께 교실의 이슬로 사라질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해서든 시궁창 같은 현실을 극복해내야만 한다. 그리고 먼 훗날 그 모든 것들을 바꿀 수 있는 위치에 올라서 '대한민국 학교 조ㅅ깠어'라 외치며 모조리 뜯어 고치면 되는 것이다.
하지만 먼 미래의 모습을 꿈꾸기엔 당장 현실이 급하다. 상대적으로 뒤쳐져있는 학생들이 시궁창과 같은 현실을 탈출할 수 있는, 만들어 봄직한 도구들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이미 필자는 지난 수차례 포스팅을 통해 그 방법을 몇가지 소개했다. 그리고 오늘 말하고자하는 '부모가 아이와 함께 공부하는 방법' 역시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가정에 '공부시간'을 만들어 보자.
가정에서 가장 손쉽게 할 수 있는, 이미 많은 가정에서 시도했을법한 방법이다. 부모는 직장에서 퇴근하고 자녀는 학교에서 돌아와 갖는 저녁시간. 대부분의 부모들은 TV나 여가를 즐기기 위한 시간으로, 학생들은 학원이나 컴퓨터를 즐기는 이 시간에 가족이 함께 모여서 공부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다. 가족조차 얼굴보기 힘들다는 바쁜 세상, 부모와 자녀가 함께 할 수 있는 시간도 가질 수 있으며 집안에 자연스럽게 면학 분위기를 조성할 수 있다. 학교에서 귀가한 자녀가 TV를 보는 부모님과 함께 공부하는 부모님에게 각각 어떠한 영향을 받을 것인지는 따로 쓰지 않더라도 쉽게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자식은 부모를 바라보고 닮아간다. '아빠, 엄마는 TV보는데 나는 왜 공부해야해?' 라는 것보다 '아빠, 엄마도 공부하는데 나도 열심히 해야겠다.'가 자녀 양육 측면에서도 훨씬 긍정적이지 않겠는가.
물론 이 시간에 꼭 공부만 하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바보상자와 데이트보다는 책 읽는 시간을 가질 수도 있을 것이며, 신문이나 저널을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회사에서 미처 처리하지 못한 업무를 해결할 수도 있을 것이며, 자격증 취득을 위한 공부를 하거나, 십자수 같은 취미생활을 영위할 수도 있을 것이다. 정신과에서선 가족력을 설명할 때 'double blind'라는 표현을 쓰는데, 이는 부모가 말하는 것과 행동하는 것이 다를 때 자녀가 혼란을 느낀다는 개념으로 많은 정신과적 문제의 원인적 요소로 지목되고 있다. 예를 들어, 부모는 TV를 보면서 자식에게는 공부하라고 말하는 것이나 평소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하라고 하고선 정작 초대했더니 화를 내거나 하는 등이 대표적인 double blind의 사례다. 이는 부모가 자식에게 건네는 말과 행동의 일치 여부를 정상적인 발달과정의 중요한 요소이며, 자녀가 '공부'하는데 있어서 부모의 역할이 얼마나 큰지를 보여준다.

부모는 구체적으로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까?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학업과 관련하여 도움 주는 일에 망설이는 가장 큰 이유가 '관련 지식의 부족' 때문이 아닐까 싶다. 당장 일선 교육현장에서 일하는 학부모가 아니라면 중고교수준의 것이라 할지라도 교육과정이나 내용이 예전과 다르게 많이 변했으며, 배운지도 오래되었기에 기억도 가물가물하고 공연히 도움 준다고 나섰다가 공부에 방해만 될까 싶어서 주저하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필자의 경우엔 수학선생님 어머니를 둔 탓에 어린 시절부터 수학공부는 지겹도록 해왔고 그 덕에 수학이라는 어려운 학문을 큰 어려움 없이 넘길 수 있었다. 공부가 무척이나 싫었던 어린시절, 수학 문제집에서 어려운 문제들을 손수 자필로 쓰시어 풀기를 강요했으며 이해가 부족했던 개념은 지겹도록 설명하고 문제를 풀도록 하였다. 그렇다고 수학선생님이셨던 어머니께 수학과 관련된 도움만 받았던 것은 아니다. 필자의 어머니는 중, 고교시절 아침마다 손수 신문 사설이나 칼럼, 주요기사 등을 올려서 주머니에 넣어주셨고 때로는 영어단어장도 한 장씩 뜯어서 넣어주셨다. 도시락 속에는 늘 어디선가 오린 문제 하나가 떡하니 자리 잡고 있었으며, 도시락을 다 먹고 난 후 문제를 풀어서 빈 통에 넣어두게끔 했다. 월말에는 그 문에의 정답률에 따라 용돈이 지급되었음은 물론이거니와 중학교 재학시절엔 피드백까지 해주셨다.

수학과 관련된 분야가 아닐지라도 이처럼 많은 도움을 알게 모르게 주셨던 것이다. 위에서 나열했던 방법들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신문 사설이야 아침에 30초정도만 투자하여 신문에서 오려서 넣어주면 되는 일이고 문제집 역시 여유 되는대로 구매하여 한 문제씩 뜯어주면 그만이다. 요즘은 해설집이 워낙에 잘 나와 있기에 사전지식이 없이 해설만 읽어도 충분히 이해가 가능하다. 자녀 교육에서 정말로 중요한 것은 교양이나 지식수준의 부족함보다는 관심과 정성인 것이다.

생각만 조금 해본다면 필자의 어머니보다 더욱 많은 도움을 줄 수도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신문 사설의 경우에도 조금만 시간을 더 투자하여 노트에 붙여서 준 뒤, 자녀의 생각을 하단에 적게 한다면 후에 많은 도움이 될 수 있다. 시사나 이슈 문제에 관하여 함께 이야기를 나눈다거나 문학서적을 함께 읽고 난 뒤, 독서토론의 시간을 갖는 것도 좋다. 영어 공부도 마찬가지다. 저녁에 가족이 모여 함께 영어일기를 쓰는 연습을 한다던가, 영어 방송을 듣거나, 토익 시험을 함께 준비하는 등의 노력을 해볼 수 있다.
중요한 것은 '함께' 한다는 것,
자녀의 의식주나 건강을 고민하는 일 이외에도 교육에 있어 부모가 할 수있는 일은 앞서 말했듯이 함께하려는 노력이다. 두 번째 이야기와 같이 부가적으로 많은 도움을 줄 수 있다면야 좋겠지만 바쁜 직장인들에겐 부담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많은 시간을 요하지 않는 작은 것부터 시작하여 하나하나 해나간다면 분명히 자녀에게는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자녀의 연령대에 따라서 다양한 것들을 시도해 볼 수 있으며, 경우에 따라선 부모 스스로에게도 도움이 될 수 있다. 해보지 않았던 것이기에 그 시작은 미흡할 수도 있고 부끄러울 수도 있다. 처음은 비록 어색하더라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적응하게 되면 큰 어려움은 없을 것이다. 형태도 이리저리 바꾸어보고 프로그램도 다양하게 마련하여 시도해 볼 수 있다. 아마 말없이 각자 할 일을 하거나 TV를 보거나 학원 다니는 것보다는 훨씬 많은 긍정적 효과를 이끌어 낼 수 있을 것이다.
혹시나 학생들 중에 이 글을 읽는 이가 있다면 부끄러워하지 말고 TV에 열중하는 부모님께 먼저 다가가서 '우리 이런 시간을 한번 만들어 봐요.' 라고 먼저 말해보자. 이 글을 읽는 이가 자녀를 둔 부모님이라면 지금부터라도 거실에 TV대신 큰 책상을 놓고 자녀와 함께하는 저녁시간을 가져보자. TV 프로그램은 재방송이나 인터넷을 이용하면 언제든지 볼 수 있는 것이지만 부모와 성장과정의 자녀가 함께하는 그 시간은 일생에 단 한번뿐인 시간이다. 그 소중한 시간을 자녀 교육을 위해서라도 위와 같이 투자해 보는 것이 어떨까 제안해 본다. 모두에게 바람직한 미래를 가져다 줄 수 있을거라 확신한다.
